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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을 다녀오다, 판문점이란?



[그림 1, 2] 북한의 판문각을 중심으로 찍은 사진, 폰카라 화질이 좋지 않다.

기회가 돼서 DMZ(비무장지대) 여행을 하고 왔다. 땅굴도 가보고 여러군데 가보고 했는데 바람도 세게불고 해서 마냥 추웠다는것밖에. 아 참 제3땅굴에서는 더웠지, 달랑 철문 하나 보려고 몇백미터를 헬멧쓰고 할머니 자세로 마냥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느라-_- 북한군, 키 180cm도 안되는 루저들, 땅굴좀 크게 만들것이지 이건 뭐 레밍스 땅굴도 아니고! 라고 말하지만 그 거리를 뚫고 왔다는 노력은 가상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어 들어간 통일촌***, 식당과 매점이 같이 있는 건물인데,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메뉴를 살펴보다가, 아니 불고기가 만천원이라니!, 대단했다. 다른 한식들은 시중가보다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정도의 가격을 유지했지만 유독 불고기만 특출나게 비쌌다. 다른 메뉴는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 '불고기' 한번쯤은 들어봤을 외국인들을 등쳐먹으려고 가격을 책정했다고 99% 확신한다. 가이드가 추천하는 음식으로 먹을 수 밖에 없고, 다른 음식을 시도했다가 입맛에 안맞을것에 대한 두려움을 노린 저도의 마케팅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불고기를 시켰다??? 시키고 보니 불고기는 시중의 3500원 짜리보다 더 양이 적었다. 하지만 중국집에서도 얻기 힘든 만두튀김을 리필해 주는거 같아서 달라고 했다, 밑반찬은 리필해줘서 계속 먹었다.

아니 앞에 내용은 그냥 재미로 남겨놓은것이고 이 게시물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등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그에대한 정보를 남겨두기 위해 작성하는것이다. 그에 대해 조사하다가 지식인 사이트에 좋은 글이 있어 여기에 가져와봤다.

===이하 지식인 전문==

판문점
판문점은 한국전쟁 발발 1년만에 개시된 정전협상 초기, 널문리 주막 자리에 만들어졌다. 6.25 전쟁당시 휴전회담이 열렸던 원래의 회담장소는 현재 위치에서 1㎞ 정도 북쪽에 있었으며, 네 채의 초가집과 회담장으로 쓰였던 가건물 두 채, 세 채의 조립식 막사가 건물의 전부였다.판문점이라는 명칭은 휴전회담 장소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이 회담에 참석하는 중공군 대표들이 이곳을 쉽게 찾아보게 하기 위해 당시 회담장소 부근에 있던 주막을 겸한 가게(店)를 한자로 적어 "板門店"으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한다.

널빤지로 만든 문이 있다고 해서 널문리로 불렸던 조용한 마을은 전쟁이 아니라 휴전회담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다. 예비회담이 시작된 이후 장장 2년 19일 동안 총 1백59회의 본회담, 1천76회의 각종 회합을 거치며, 지리하게 진행되던 정전협상은 53년 7월 27일, 마침내 끝을 보았다. 협상을 시작한 지 2년 19일만의 성과였다. 그리고 널문리 일대에는 정전협정 규정에 따라 비무장지대를 감시 감독하는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 본부가 들어섰다. 군정위를 구성하는 유엔사령부와 조선인민군, 중국 인민지원군 소속 장병들이 이 지역을 공동으로 경비했다. 민족분단의 상징이자 냉전체제의 정치1번지 판문점은 이렇게 태어났고, 분단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휴전을 관리하는 장소이다. 현재는 남북대화의 장소로 이용되며, 군사정전회담이 열리는 곳이다.

본래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장군단 진서면 선적리와 개풍군 봉동면 청송리 사이에 자리하고 있지만, 현 북한측의 행정구역상으로는 판문군 판문점리이다. 위도상으로 이른바 38선상에 가장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이 됐다. 한국전쟁의 휴전회담은 처음에 개성에서 시작했으나, 더 중립적인 장소를 찾다가 개성에서 20리 떨러진 이곳 널문리 콩밭에 대형 천막을 치고 협상을 계속했고, 53년 7월 마침내 휴전협상을 맺으면서 조그만 널문리 콩밭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자리게 되었다.

널문리는 언젠가 서울에 다녀가던 중국사신이 이 마을에서 술 한잔을 얻어먹은 것이 이곳을 주막거리로 만들었고, 이후 서울과 개성을 오가던 길손들이 잠시 숨을 돌리던 곳으로 정착됐다. 또한 임진왜란시 왜구의 침략을 피해 평양으로 피난을 가던 선조 일행을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공동경비구역
판문점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공동경비구역을 통칭 판문점이라고 부를 뿐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유엔사령부 측 정문 초소를 지나면 여러 채의 건물들이 보인다. 직경 8백m, 총 15만평의 공동경비구역 중심에는 7채의 콘센트 막사가 있는데, 이 중 가운데 것이 군정위 본회의장이다. 그 옆으로 하늘색 막사가 유엔군 측 사무실이며, 회색은 북한측이 사용한다. 다른 건물들은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숙소, 경비부대 막사, 그리고 경비초소들이다.

판문점의 북쪽 절반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것이다. 원칙적으로 공동경비구역 남쪽 절반은 유엔군 사령부의 관할 하에 있지만 남쪽의 사정상 주한미군이 유엔군의 역할을 거의 다 수행하기 때문에 판문점 남쪽 지역은 실제로는 미군의 관할 하에 있다.

판문점 남쪽이 우리 정부의 관할하에 있지 않고 유엔군(미군)의 관할하에 놓이게 된 것은 1950년 7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이‘현재의 전쟁 상태가 계속되는 기간 중에는 대한민국의 육·해·공군을 귀하의 작전 지휘하에 기꺼이 배치하겠다’는 내용의 [작전지휘권 이양 공한」을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에게 보내 작전 지휘권을 유엔군 사령부로 넘겼기 때문이다. 이후 '전쟁 상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 작전권을 회수하지 못하였고, '정전협상' 과정에서도 한국 측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위치
판문점은 비무장지대 내 한국인이 가볼 수 있는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행정구역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북한 행정구역으로는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리이다.

판문점은 이 지역의 이름이며 공식명칭은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다.
판문점은 155마일휴전선상의 서쪽 끝에 위치하며 통한의 민족 분단사를 증언하고 있다.
판문점은 서울에서 서북방으로 62Km,북한의 평양에서 남쪽으로 215Km, 개성시로부터는 10Km 떨어져 있다.

출처 :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0101&docid=181926&qb=7YyQ66y47KCQ&enc=utf8&section=kin&rank=3&sort=0&spq=0&pid=fYzxQB331zsssv5frjNssv--518472&sid=SvzeaurM-EoAACo1E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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