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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후, 일년 후를 읽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주인공 조제가 어쩌다가 이책의 조제를 좋아하게 되었을까라는 궁금증에 한달전에 책을 보았고, 책이 인상에남아 블로그에 글을 남기기로 하였다. (물론 영화와 관련해서도 글을 남길 예정이다) 하지만 프랑스 문학의 특성인지 뭔가 잡힐듯 안잡히는 느낌덕분에, 사강에 대해 좀 더 알고 글을 작성해야한다 생각해서 다른 책이나 자료들을 찾으려다보니 시간이 또 흐지부지 지나갔다. 아무래도 글을 작성해두지않으면 책 내용도 잊어버리고 영영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할것같아서 이번에 급히 글을 정리해본다.


이책의 핵심주제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질 거예요.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사랑은 움직이는거야!"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이 베르나르와 조제의 관계에 관해서만 생각하고, 다른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않는다. 


물론 조제가 핵심인물이긴 하지만, 여기에만 집중하게 되면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 될 수 없고,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 이 책의 핵심주제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러 인물들의 사랑방식중에서 조제의 사랑방식이 '사랑은 마음이 시키는거고, 움직이는거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등장인물에게는 각각의 나름대로의 사랑방식이 존재한다. 이를 파악해내기위해서는 각 인물들에대한 관찰이 필요한데, 앞서 말했듯 너무나 분산되어있고 불명확하게 서술되어서 감을잡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아래에 조금 더 객관적으로 정리해보았다.



우선 베르나르와 니콜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밤늦게 들어오는 베르나르를 맞이하기 위해 출입문쪽으로 얼굴을 돌려 잠을 잘정도로 니콜은 베르나르를 생각하지만, 베르나르는 니콜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니콜이 (조제도 겪어본..) 유산의 고통을 겪고있는 와중에도 베르나르는 조제만 찾는 무심한 남자다. 니콜은 활자매체에 대단한 존경심을 품고 다른사람의 직업에 대해 무척 경탄해하지만, 베르나르는 그런 니콜이 말이통하지 않는다며 무시한다. "난 당신 수준에 맞추려고, 당신을 도우려고, 당신의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난 영리하지 못해. 재미도 없고.. 난 그걸 잘 알고 있었어.." (소설속에서는 니콜이 나이많은것처럼 묘사되었는데, 알고보면 28살이다.)


비슷한 모습으로 알랭과 파니의 관계가 있다. 베르나르와 니콜이 그랬듯, 알랭과 파니도 연애결혼한 부부이다. (전쟁전부터 오랫동안 서로에게 홀딱 빠져있었다가, 4년동안 떨어져지내다 50대가되어 다시 만났다) 알랭도 역시 파니에게서 마음이 떠나서, '그는 그들이 사랑하던 시절 그 자신의 이미지 그리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이 했던 일종의 결심을 즐겨 떠올릴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건 윤기를 잃은 이 어깨가 아니라 베아트리스의 단단하고 둥근 어깨야. 내게 필요한건 영리한 이 두눈이 아니라 베아트리스의 뒤로젖힌 열정적인 얼굴이야'라고 생각한다. 베아트리스에게 노골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알랭의 모습을 지켜보는 파니는, 크게 내색하진 않지만 역시나 마음고생을 한다. 그저 베아트리로부터 버려져 밥도 못먹고 다니다가 게걸스럽게 파니의 음식을 먹는 에두아르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볼 뿐이다. 알랭은 재정적인 부담을 무릅쓰고 매주 월요일마다 젊은이들을 초대하는 '월요 살롱'을 개최하며 그저 젊음을 동경한다.


지적이고 매력적인 남자인 베르나르는 조제와의 이전관계를 잊지 못하고 오밤중에 조제의 집에 전화를 하지만, 조제 대신 자크가 전화를 받은바람에 아무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런데 알고보면 베르나르는 조제뿐만 아니라 베아트리스와도 한때 꽤나 격정적인 관계를 가지기도 했다. (4년전 전쟁직후 자신들의 부르주아 가정을 져버리고 2년동안 관계함). 베아트리스는 아직 베르나르에게 호감이 있어 마주칠때마다 반가워하지만, 조제는 자신의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고 말했음에도 계속 호감을 보여오는 베르나르가 부담스럽다. 베르나르는 알랭과 같이 일하며 잡지에 비평을 쓰고 소설도 썼는데, 그래서인지 사랑에서도 논리적인것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 유명한 '조제, 이건 말이 안돼요. 우리 모두 무슨짓을 한거죠?...'의 대사가 나온듯 하다.


베르나르는 점점 책을 읽어갈수록 마음이 정적인 사람인듯한 느낌을 준다. '그곳은 그에게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생기없는 도시로 여겨졌다. 그는 그곳에서 '레퀴 드 프랑스'라는 이름의 가장 평범한 호텔을 찾아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마치 연극을 위해 연출을 하듯 그 모든 환경을 선택했다' 그에비해 조제는 조금 더 생기있고 여유있고 개방적이다. 아마 그것이, 비록 베르나르와 조제가 지나치게 닮았지만, 그들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니었을까. '그가 그녀에게 그들의 사랑에 대해 말하자, 그녀는 그에게 사랑의 짧음에 대해 말했었다. "일 년 후 혹은 두 달 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거에요"그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오직 그녀, 조제만이 시간에 대한 온전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격렬한 본능에 떠밀려 시간의 지속성을, 고독의 완전한 중지를 믿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역시 그들과 같았다.'


조제와 자크는 알랭이 주최한 '월요 살롱'에서 우연찮게 만난 사이이다. ('그는 베아트리스를 연모하는 남자 중 한사람에 의해 그곳에 끌려갔던 것이다.') 자크는 통속적이고 재미없는 잘생긴 의과대학 학생이다. 조제는 자크를 만난 첫날밤, 생각치도 않게 어찌어찌하다가 자크를 자기집으로 들여보내고 거기서 계속 살게한다. "이건 육체의 문제도 아니야. 난 이 문제가 나를 나에게서 반사시키는 혹은 나를 끌어당기는 영상인지, 아니면 영상의 부재인지, 그것도 아니면 영상 자체인지 알수가 없어. 하지만 무엇이 됐든간에 별 흥미없어. 어쨌든 잔인한 일은 아닐거야. 그건 그냥존재해. 그래, 이게 정확한 표현이야. 난 당신이 무척 마음에 들어. 아직 강렬한 열정이라고는 할수없지. 하지만...", 


'아무에게도 반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만고불변의 일차적인 관념이 있지만, 그 관념이 무시된 현재 상황에 분노하지 않고 유순한 기분을 느끼는 상황이다. 오히려 그렇게 '길을 잃은것'을 경험하면서 심장이 거칠게 뛰고 승리감에 차게되었다. 또한 자기집 인테리어를 담당한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본능적으로 자신이 자크를 사랑함을 직감하게 된다. '"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전 그사람이 저와 잘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의 인테리어가 저한테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은 적도 없고요. 사람들이 가끔 그렇게 말하지만요." 순간 조제는 자크를 떠올렸고 얼굴이 붉어졌다.'


베아트리스와 졸리오는 연극으로 엮인 관계이다. 아직 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아름답고도 난폭한, 야망의 화신인 20대의 베아트리스는, 저명하다고 인정받는 연극 관계자인 50대의 졸리오를 만난다. "하지만 전 제 마음에 드는 일을 정열적으로 하고싶어요. 아니, 저를 열광시키는 일을요. 같은 맥락일지 모르지만, 그래야만 많은 열정을 만들어낼 수있으니까요"라고 말하는 베아트리스를 보며 졸리오는 '어쩌면 난 이 여자가 나를 웃게 하기 때문에 이 여자를 뒤쫓는것인지도 모르겠군'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기품있는 몸짓으로 테이블 너머로 그에게 한손을 내밀었고, 그는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거기에 입을 갖다댔다. 확실히 그는 자신의 직업을 무척 좋아했다.' 그녀와 그는 정말 잘맞는 만족스러운 한쌍이었다. 하지만 베아트리스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졸리오는, 데뷔무대에서의 그녀의 얼굴을 보며, 이 여자가 더 많은 열정을 위해 또다른 사람을 찾아나설것이라는것을 예감한다.


알랭이 주최한 '월요 살롱'에서 처음 베아트리스를 만난 에두아르는 알랭의 조카로써, 순결한 마음을 지닌 잘생긴 청년이다. '허영심과 사랑을 혼동하지 않았고, 열정적으로 사는것 외에 다른 야망을 품고있지 않았다.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도,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싶다는 욕망도 없었다. 유연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서 베아트리스는 그에게 즉각적인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순수한 마음으로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그녀와 잠자리까지도 공유하지만, 베아트리스는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러나 잠을 자고 있는 베아트리스는 에두아르가 하고 있는 사랑의 말이 어떤 꿈에서, 어떤 기대에서 솟아나오는지 알지 못했다.' 


그것은 베아트리스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이나 쾌락보다 '직업적 성공'이 더 중요하고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 '베아트리스는 목석같은 여자는 아니었지만, 육체적 사랑에 대단한 취미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육체적 사랑이 건강한 것이라고 간주했고, 심지어 한때는 자신이 감각에 지배되는 여자라고 믿었다.', '그녀는 에두아르의 기다란 육체를, 밤색 머리칼에 둘러싸인 젊은 남자의 목덜미를 더 이상 떠올리지 않았다. 19세기 드라마의 정열적인 여주인공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그래 아니야 난 당신을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어. 그게 뭐 어때서? 내가 왜 당신을 사랑하겠어? 그리고 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데? 당신은 내가 할일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녀는 조명이 비치는 창백한 혹은 어두운 연극 무대를 생각했다. 그러자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행복감이 그녀를 감싸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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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시간이 있는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눈(目)을 찾는다. 그것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77p


요즈음 무슨바람이 불어 문학작품들에 심취해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던중 위 문장을 보았다. 사람들은 왜 문학을 사랑할까, 감동적인 스토리를 경험하기 위해서, 유려한 문체나 표현 자체를 감상하기 위해서, 또는 상상력으로 세계가 넓어지는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 내가 추구하는 감상포인트는 '나 자신을 알기위해서'이다. 이나이를 먹어서까지도 나 자신을 알지 못하는데, 이런 타인의 창작물들로부터 약간의 힌트를 얻게되면 뭔가 엉켜진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혹은 생각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주위에서 '이것이 성공적인 삶이고 이것이 성공적인 사랑이다', 라고 나름대로의 정답을 말해주지만(마치 위의 인테리어의 예시와 같이), 그런 모범적 성공스토리들이 나의 마음을 움직여주진 않는다.


나는 베아트리스같은 타입이라 생각한다. 내 꿈을 응원해주고 지지해줄 사람이, 내 가슴한켠을 두근거리게 하는사람보다 좋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 꿈과 모든것을 포기할정도의 에두아르같은 감정파는 아니다. 대신 '열정'이라는것이 나의 삶의 한가운데 있고, 나는 이것을 연료로 삶을 살아간다. '열정이란 삶의 소금이며, 열정의 지배 아래에서 사람은 소금없이 살 수 없다는 것-열정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너무나 잘할 수 있는 일이지만--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니콜같은 사람은 나를 마음아프게 한다. 왜냐하면 나를 향해 기울일 마음과 노력을 느끼고 거기에 고마워할것이지만서도, 거기에 호응하지 못하고 내가 그만큼 신경써주지 못하게 되어 결국 서로에게 상처가 될것을 알기때문이다. '세상에, 성서에나 나오는 여자가 바로 여기 있었네. 남자를 붙잡아두려면 아기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남자를 그런 무시무시한 상황 속으로 몰아넣는 여자 말이야. 난 결코 그런 여자는 되지 않을 거야. 만약 그렇게 되면 아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불행할 거야' 


일반적으로 사랑은 남녀가 호감을 갖고 꾸준히 만나면(혹은 한눈에) 자연스레 생기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든 생각은, 그것은 심리적 애착관계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이고, 헤어짐을 슬퍼하는 이유는 그저 그 애착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에 아쉬워하는것--우리가 사물이나 동물을 애정하듯; 단, 사람과의 인격적 관계이기 때문에 그 강도가 높은것--정도에 그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호르몬의 분비가 멈추고 상대가 더이상 가슴을 뛰지않게 할때, 헤어지지 않을 이유는 사라진다. 이런 경우, 그 호르몬에 중독된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상대를 찾아 나설 것이고, 일반적인 경우에는 관습과 제도에 따라, 또는 그동안 쌓아왔던 우정으로 인해 약간의 세로토닌이 분비되는 그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그정도에 만족하며 사는것이 대부분의 현실이겠지만, 나는 그것이상을 추구한다. 나의 삶을 더욱 불태워 주는 사람, 혹은 연료를 꾸준히 공급해주는 사람을 찾는다. 즉, 원문에서 나온 '자명한 행복의 원천'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사람이 흔치 않다는것을 알기에,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열렬히 사랑할것이다. 한때는 평범함을 꿈꾸며, 그리고 새로이 원천을 찾아나섬에 지친나머지 원천이 메말라버린 사람을 옆에두려고 했으나, 어느순간 나까지도 메말라가는 느낌을 받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사람은 그런사람을 만나야 한다. 니콜과 파니는 왜 그렇게 불행하게 살아야 했나. '빗물에 젖은 담배'의 모습은 슬프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일반적인 삶을살고 사랑을 하는것은 힘들겠지만, 대신 더욱 더 행복하고 활기차고 의미있는 사랑을하고 삶을 살것이라 확신한다. 이떄 드는 생각. 홍감독은 이제야 행복의 원천을 찾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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