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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장에플람 바부제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감상하고
어떤 공연을 갈까말까 고민될때는 아무래도 아티스트보다는 프로그램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편이다. 강력한 타건으로무장한 여전사들인 유자왕과 아르헤리치의 공연 각각은 그들의 강렬한 에너지를 느끼기위해 반드시 찾아가야할 공연이지만 (특히 유자왕+두다멜, 아르헤리치+임동혁의 조합은 엄청난 기대를 일으킨다) 프로그램이 맘에 들지않아서 예매를 한참고민하다가 그냥 안가기로 결정하었다. 그런 와중에 이번 서울시향 공연은 좋아라하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곡들과, 문명을 플레이하면서 지겹도록 들었던 브람스의 3번교향곡으로 이루어져서, 익숙함때문에 그저 생각없이 예매를 진행하였다. 그런의미에서 이번 2019 교향악축제 프로그램들이 괜찮아서 최대한 많이들으러 다닐 예정이다. 가격의 부담은 없으니 시간만 된다면...
이번 서울시향공연에는 피아니스트 장에플람 바부제가 협연했지만 사실 그가 누군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왠만하면 공연에 앞서서 프로그램과 연주자들은 미리 예습을 하고가는 편인데 요즘 너무나 바쁜지라 (지난달 일본여행 정산이라도 해야하는데..) 프로그램만 믿고 간것이다. 그런데 만약 예습을 했다면 이번공연 예매를 주저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물론 바부제가 프랑스음악의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해석이 내가 기대하는 그해석과는 약간 달랐기 떄문이다. 아래에 첨부한 그의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Suite Bergamasque)을 도입부를 처음듣고는 나도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을 지었다. 대개 낭만주의의 곡이라 한다면 대개 뭔가 흐릿하고 부드러운 동이틀무렵의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그의 연주에서는 각각의 음들이 통통튀고 개성있게 전달되었기에 그 해석상의 괴리로 인한 어색함 때문이었다. 물론 초반부만 그렇고 뒤로갈수록 기존의 해석과 유사해지고 (Passepied는 오히려 유쾌한 느낌이 잘전달됨) 다른 드뷔시의 곡들도 무난한 해석으로 연주하지만 종종 이런 성향이 보인다는점에서 가져와보았다.
라벨 피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는 피아노와, 곡과 한몸이되어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곡을 연주해냈다. 힘들이지 않고 쿨하게 뚝딱뚝딱 음을 만들어내는 장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도입부의 그 전혀 갈등없고 담백한 해석은 아직까지도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었다. 각각의 음들은 또렷하고 강단있어 오케스트라에 전혀 묻히지 않는 전달력을 보여주었으나, 그것이 곡의 감상적(sentimental)인 면을 방해하고 있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미켈란젤리도 비슷한 담백함을 보여준다고 할수 있겠지만 바부제의 경우에는 뭔가 감상할만한 시간적 여유를 허락하지 않고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느낌이었다. 특히 그의 앵콜곡으로는 아래에 첨부한 Pierné의 Étude de Concert in C Minor, Op. 13와 라벨의 물의 유희(Jeux d'eau)가 연주되었는데, Pierné의 곡은 아래 동영상을 1.25배로 빠르게 돌리면 될정도의 속주였기떄문에 '아니, 집에 가스불끄는걸 깜박했었나? 오늘 뭐가 이렇게 급해?' 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물의 유희도 마찬가지. 그래도 물의유희는 빠르긴해도 물의 느낌을 매우 잘살린 훌륭한 연주였다.
다른 작곡가들의 곡에서는 어떤 해석을 보여줬는지 궁금해서 프로코피에프 협주곡을 찾아서 들어보니 '러시아곡에서 프랑스냄새가나네..'라는 느낌? 그래서 바르톡 협주곡을 들어보면 이번에도 역시나 그 프랑스인 특유의 날렵한 자유분방한 느낌을 곡의 이곳저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드뷔시는 위에서 적었듯 약간 핀트가 안맞는 느낌이니.. 역시나 라벨, 또는 그 이전시대의 고전풍 프랑스 작곡가들과 잘어울리는 연주자인것 같다는 추측이다. 그리고 라벨의 피아노협주곡은 '피아노 협주곡 G장조'보다는 왼손을 위한 협주곡 (Concerto In D For The Left Hand) 이 잘어울리는 것으로 나름의 타협을 보았다.
그렇지만 바부제의 여러 인터뷰를 살펴보다보면 그의 생각과 나의 나의생각이 일치하는 부분이 꽤 있어서 그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특히 모짜르트는 단조로움이 특징이고 {하이든,베토벤}은 그와는 정반대라는것 (그래서 그도 나도 모짜르트를 즐겨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드뷔시는 각각의 곡의 개성이 뚜렷하고 일원화하기 어려운반면 라벨은 어느정도의 클래식문법을 준수한다는 것을 언급하였는데 좋은 정리라고 생각한다. 이부분에서 나는 더욱 드뷔시를 좋아하고 그는 더욱 라벨을 좋아하는것으로 성향이 구분되는것 같다 (Jean-Efflam Bavouzet talks Debussy, Ravel, Haydn and Mozart! (rec. 11 June 2016)
아무튼 바부제에 대한 내용은 이정도로 정리하고, 급히 서울시향의 쁠랑과 브람스의 곡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쁠랑의 곡은 생각보다 날렵하고 리듬감있게 잘 살려서 암사슴의 위트있는 흥을 잘 돋워주었다. 봄이 다가오는 시기에 아주 잘어울리는 선곡과 연주라 생각하였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기악부분은 아쉬움이 있고 (라벨의 곡에서도 제대로 연주가 안된부분이 있었음!!) 현악은 흠잡을데가 없는 연주였다. 개인적으로는 위에 적어놓은 이유로 라벨 피협에 큰만족이 안되어 대신 쁠랑의 암사슴모음곡 (Les biches Suite) 에서 더욱 만족감을 느꼈다.
브람스의 3번교향곡은, 완성도는 앞의 곡들보다는 높았으나 (현악 호흡ㄷㄷㄷ) 기대했던 123악장을 약하게 연주하면서 양감의 확실한 변화를 주지않아 그냥 밋밋하니 재미가 없었다. 4악장에서 잔뜩 터트리려고 123악장에서 힘을 모아둔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4악장을 빵빵!터트리지는 않음ㅠ) 그냥 123악장은 기악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시향환경상,인원구성상의 제약이겠구나 하며 아쉬운 위안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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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Debussy, Suite Bergamasque. Jean-Efflam Bavouzet, piano
Gabriel Pierné - Étude de Concert in C Minor, Op. 13 (1887) [Score-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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