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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를 꿈꾼 로봇'을 읽고



"그리고 무대장치는 극장의 오랜 역사 속에서 그 시대가 이룩한 테크놀로지의 결과이면서도 예술가가 누릴 수 있었던 표현의 도구였다. 그것이 자동이 아닌 사람이 움직여야 하는 기중기나 도르래에 불과한 장치에 머물렀다 하여도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배우와 연출가의 표현력이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진화된 기계장치로 볼 수 있는 로봇 또한 예술가의 표현 영역과 연결지어 고려해야 한다."


로봇의, 예술에 대한 기술적인 고찰에 대해 적었을까 생각하고 이 책을 펼쳤으나, 이 책은 로봇이 주체가 아니라 예술이 주체가 되어 서술되는, 예술서적이었다. 중심 내용은 위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 즉, (지금까지의 예술의 관점에 따르면) 예술가가 주체가 된 상태에서 로봇은, 작품의 일부로서 역할하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가 로봇을 사용해야 하는 목표가 있으며, 이것이 효과적으로 수용자에게 받아들여질때에 비로소 로봇의 예술화가 이루어 진다고 저자는 본다. 


로봇이 자기들끼리 부수고 불지르고 하는것을 예술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충격적인 비주얼과, 기계적이고 폭력적인 이 세태를 로봇이라는 매개로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기 떄문이다. 인간 배우가 아무리 치고받고 싸워도 가학적인 로봇의 표현력을 따라할 수 없기 때문에 로봇이 사용되는 것이며,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마크 폴린(Mark Pauline)의 SRL(Survival Research Laboratory)가 있다. 이들의 모토는 '지구 상에서 가장 무서운 쇼를 만들어 내는 것(Producing the most dangerous shows on earth)이라고 한다. 아래 동영상을 끝까지 보면서,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얼굴모양의 형상 뿐 아니라 전체적인 퍼포먼스에서도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Mark Pauline at George Olson Cadillac


"치코 맥머티는 로봇이 인간의 행위를 어느 수준까지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 치코 맥머티의 작업은 애초부터 인간의 움직임(movement)과 조건(human condition)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된다. 그는 인간이 섭취하는 에너지원과 그로 인해 움직이는 근육에 관심을 가지다가 인간과 로봇의 유사성을 발견한다. ... 그에게 있어 로봇은 단순히 자신의 의도와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작품이 로봇이 아니라 움직이는 조각(moving sculpture)라고 밝힌 바있다. "


책의 내용을 뒷받침 하는 내용으로, 본문내에서 위와 같은 문장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치코 맥머티(Chico MacMurtie)는 <The Ancestral Path through the Amorphic Landscape>에서, 추상적인 표현을 위하여 로봇을 사용하였다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본문의 논지에서 본다면, 달랑 두 다리만 있고 걸어다니는 마네킹 또한,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이라는 위대한 개체를 표현하는 '예술적인 로봇'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고 백남준님의 '로봇 K-456'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하나의 포스팅을 할 예정인데, 아무튼 이와같이 로봇은 우리의 두뇌를 관통하는 직관을 제공해 주는 매개로 작용할 수 있다. 이때, 예술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술은 주체적인 개물(個物)을 통하여 보편적인 표현을 하고자 하는 기술인 동시에 지적(知的) 활동이다. 예술가는 보편적인 것을 직관(直觀)하여 그것을 종이·그림물감·돌·소리·기호 따위 물질적 재료에 의하여 표현하고, 이것을 관상자(觀賞者)에게 직관시키고자 한다. 예술작품으로부터 관상자가 향수(享受)하는 것은 단순히 관능적 쾌감에서 그치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작품을 통해서 미(美)를 추창조(追創造)하는 과정이다. 개성적인 가운데도 보편성이 나타난 예술작품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까닭에서이다.

[출처] 예술 | 두산백과


21세기에 다가오면서, 예술의 표현은 로봇을 넘어 그 이상으로 발전된다. 이제는 생물학적인 영역으로 표현의 범위를 확장하는데, 이의 예로 스텔락의 <제 3의 손> 뿐 아니라 에두아르도 카츠의 형광토끼 '알바'가 있다 이를 통해 과학과 예술사이의 장벽은 허물어 지게 되며, 또한 로봇이 능동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는 <에이 포지티브>라는 작품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때 예술의 주체를 혈액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볼것인가, 혹은 혈액속의 산소를 통해 또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주체인 '로봇'으로 볼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물론 본문에서는 '평등'하다고 표현했지만)


"<에이 포지티브>에서 에두아르도 카츠는 인간의 신체와 로봇의 생물학적 결합을 시도한다. 로봇은 이제 바이오봇(biobot)으로 진화하게 된다. 그의 퍼포먼스 안에서 인간과 바이오봇은 정맥주사를 통해 영양분을 '직접적'으로 주고받는다. 사람은 자리에 앉아 혈액을 뽑기 시작하고 이를 바이오봇에게 전달한다. 혈액 속에서 충분한 산소를 추출한 바이오봇은 하나의 불꽃을 태우기 시작한다. 이  불꽃은 생명의 상징이다. 사람별로 혈액의 산소 함유량은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있기 떄문에 불꽃의 모양 또한 사람마다 다를것이다. 대신 바이오봇은 포도당을 사람에게 전달하고, 이는 다시 혈액의 순환에 관여한다. 이제 사람은 바이오봇이라는 기계와 공생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로봇과 사람은 평등한 대화를 시도하게 된다. 에두아르도 카츠에게 있어 로봇은 일을 해야 하는 '노예'도 아니며, 사용해야 하는 '도구'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이 로봇과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제 로봇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발전하여 인간과 함께 예술을 생산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급격한 발전으로, 사람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이에 따라 실시간으로, 능동적으로 처리하여 새로운 예술을 창출하고, 또한 사람의 감정을 이 데이터들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아이즈웹). 책의 범위를 넘어본다면, 역으로 관객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여 사람의 동작을 생성해 낼 수 있을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것은 인간에 의한 예술인가, 컴퓨터에 의한 예술인가. 만약 예술이라 한다 하더라도, 컴퓨터에는 이른바, '혼'이라는 것이 없는데, 그럼 이것은 진정한 예술이 아닌것일까?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에필로그의 이 부분을 보자면, 프롤로그에서의 문장(본문 맨위에 인용)과 일맥 상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연출가는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로봇을 사용하며, 이런 방향성이 없다면 로봇의 예술상에서의 존재가치는 없는 것이다. 머지않아 주제의 표현을 위해, '능동적인' 로봇(특히 소프트웨어)에 어느 매개변수가 들어가고 활용될 것인가(매핑)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바로 작품의 '예술성'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즉,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통찰력으로 이를 분별하여 활용하는, '매핑능력'이 예술가의 자질로 인정받는 날이 곧 올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적 표현력과 매핑에 대한 지식이 축적된다면, 정말로 로봇 스스로가 표현능력을 갖게되어, 언젠가는 발레리나가 되어 무대에 서지 않을까! 


"모든 시대의 로봇이 그러하듯이, 무대 위의 로봇도 사회상과 이데올로기를 반영해야 한다. 즉, 로봇에 대한 연출가의 고유한 생각과 이를 둘러싼 이데올로기가 무대에 고스란히 드러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로봇이 인간의 춤을 기가 막히게 잘 따라한다고 해서 바로 예술 작품이 탄생하지는 않는다. 산업 박람회에서 로봇의 새로운 기능을 소개하는 '로봇 퍼포먼스'는 공학적 의미의 퍼포먼스이지, 예술적 의미의 퍼포먼스가 아니다. 앞으로 무대 위의 로봇은 신의 숭고한 대리인이자 인간 영혼의 상징이어야 한다. 그리고 예술의 한계에 도전하는 연출가의 고뇌로 조심스럽게 피어나야 한다.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만 로봇은 인간의 춤을 따라하는것이 아니라 완벽한 인간의 춤을 출 수 있게 되며, 나아기 로봇 자신의 춤을 갖게 될 것이다."


사족 : 책의 제목은 AI 로봇에 대한 내용처럼 작성되어있지만, 막상, 스스로 예술적 표현을 생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가진)로봇에 관하여는 초반에 등장했던, 미래상을 그린 R.U.R의 재현부분과, 위에 인용문장에서의 한줄, '로봇 자신의 춤'이라는 언급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리뷰글에서는 마치 이 책이 '예술 로봇의 등장, 그리고 로봇에 대한 밝은 미래'을 예견하는듯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말하지만, 이 책은 로봇으로 어떻게 예술을 표현할것인가에 대한 '예술서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도, 로봇, 예술 각각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공학자들과 예술가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은 네이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발레리나를 꿈꾼 로봇-로봇과 퍼포먼스, 김선혁, 2009.4.10, ㈜살림출판사 - 살림지식총서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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