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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파이리와 꼬부기
사람들은 우리가 친구인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파이리. 불을 뿜어내며 주변을 불사르는 그 느낌이 좋다. 물론 가끔 장난이라고 한것이 심해져버려 산이나 집을 조금 불태우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고 인간들과도 잘지낸다. 왜냐하면 나는 태초마을 화력발전소에서 상근하며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중요한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원자력발전소가 없어진지 벌써 50년쨰. 바이오매스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좀 더 높은 효율을 가진 미생물을 찾아헤매다 결국 유전자 조작된 생명체에 그들의 성과를 결합시켜, 낮은 온도에서도 폭발적인 화력을 생산해내는 나를 만들어냈다. 꼬부기는 나의 불을 뿜는 성질에 반대되는 성질을 활성화한 개체로써, 어떻게 보면 나와 완전 반대되지만, 나와 동일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우리둘은 서로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인간들은 구분의 편의를 위해 나의 꼬리에 불을 붙여놓았고, 꼬부기의 등에는 거북껍질을 붙여놓았다. 그러면서도 비슷한 외모때문에 인간들은 우리를 친구사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의 가장 큰 적수는 꼬부기이다. 앞에서 말했듯 나와 대비되는 성질을 제외하면 우리는 거의 동등하게 설계되어있어서, 나의 약점을 꼬부기는 너무나 잘안다. 내가 어딜 간지러워 하는지, 그리고 내 명치가 어딘지.. (인간들의 약점인 명치는 가슴팍인데 사실 우리의 명치는 그쪽이 아니다. 아마 찾으려면 고생 꽤나할거다. 상상도 못한곳에 명치가 있으니.. 후훗..) 인간들은 우리를 만들어내면서 성향도 그에 맞게 잘 설계해놨다. 나는 불을 시도때도 뿜기위해 항상 열이받아있고 불장난을 좋아하는 성향인데, 꼬부기는 평화를 사랑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게끔 설계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불을 지르고, 꼬부기는 그 불을 끈다. 사람들은 나를 천방지축이라 생각하고 항상 내가 지른 불을 꺼버리는 꼬부기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아무일도 안하면 꼬부기는 할일이 없게될텐데.. 내가 기껏 에너지를 모아서 불을 지를때면 꼬부기는 거기에 따라와 물만 휙하고 뿌려대며 순식간에 불을 꺼버린다. 꼬부기는 수력발전을 하기에는 힘이 약해서, 할수있는 일은 내가 지른 불을 끄는일밖에 없다. 그래서 거의 나를 감시하는 일만 전담하고 있다. 내덕분에 돈을 벌면서도 내 일은 살뜰하게 방해하는 아주 얄미운 녀석이다. 그리고 또 열받는것은 꼬부기가 나보다 조금 더 귀엽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불을 품어야 해서 계속 칼로리를 태우느라 살이 좀 빠져있는데, 꼬부기는 운동도안하고 물위에서 둥둥떠다니기만하고해서 얼굴도 둥글둥글하다. 귀여운 외모덕분에 각종 협찬이나(듣자하니 하연수라는 인간 연예인한테 매달 특허사용료를 받고있다더라..) 홍보대사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 비해 나는 모델로 불러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은 내가 다하고.. 순전히 이미지로 먹고사는 꼬부기에 질투를 느낀다.
언젠가는 생각해봐도 너무 열이받아서 꼬부기를 골탕먹일 작정으로 사막에다 불을 질러놓았다. ‘여기에서만큼은 꼬부기가 힘을 쓰진 못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꼬부기가 신고를 받고 사막까지 왔는데, 타는 태양에 벌써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었다. 사실은 꼬부기가 오다가 목이말라서 다시 동네로 돌아갈거라 생각하며 이곳에 불을 질러놓은것인데, 이를 꽉깨물고 여기까지 온것을보고 사실 조금 놀랐다. '여기까지오느라 불을 끌 물이 별로 없을텐데. 제발 돌아가…' 하는 마음으로 더욱 세게 불을 지폈다. ‘링 위에서 당신이 죽든 내가 죽든둘 중 하나는 꼭 죽어서 내려오도록 합시다.’
꼬부기가 말을 걸어왔다. “어쩌자고 이러는거야..” 그래서 “나는 나의 할일을 하고, 너는 너의 할일을 하고있는건데 뭐!” 라고 대답헀다. 그랬더니 꼬부기는 “나의 할일이 뭐고 너의 할일이 뭔데? 너의 할일은 불지르는거고 나는 불을 끄는게 우리의 할일이니?”라고 물었다. 거기에 나는 “내가하는건 불지르는거 맞아. 나는 원래 불을 내려고 만들어진거거든. 사실 나는 내가해야하는일을 충실히하고 있어. 그런데 너는 뭔데. 내가 일을 하면 너는 거기에 그냥 얹어 가기만 하잖아. 일은 내가 할테니까 너는 그냥 사람들 기분이나 맞춰줘. 내 일 방해하지 말고. 너같은거 없어도 세상은 잘굴러갈거라구.”
사실 마지막 문장은 생각도 없던소리인데 말하다보니 감정이 격해져서 맘에도 없는 이야기를 했다. 말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뱉은 말이라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꼬부기의 얼굴이 시무룩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하긴 했지만, 내가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꼬부기가 한마디를 했다 “우리의 할일이 고작 불지르고 불끄는 일이었니? “
그 한마디를 들은순간 많은 생각이 났다. 여태까지 나는 당연히 태초마을에 불을 지펴내는게 나의 일이라 생각했고, 나의 모든생각은 어떻게하면 불을 더 크고 화려하게 낼 수 있을까? 하는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백만볼트 전기를 생산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우라는 인간이랑 허구한날 놀러다니느라 인간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피카츄부터 시작해서, 숲속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사람들에게 방귀나뀌어대는 또가스같은 녀석들을 보면서 정말 태초마을에 도움되는 녀석들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꼬부기의 한마디가 그 생각을 모두 뒤집어 놓았다. ‘내가 왜 불을 지르는거지?’ 결국에 태초마을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며 그들에게 더욱 살기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불을 내뿜는것이었다. 꼭 화력발전만이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걸까? 어떻게보면 내가 없더라도 태초마을은 역시나 잘 돌아갈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을 조금 더 편하고 행복하게 만드는것. 그것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꼬부기는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던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꼬리를 휘휘저어 불을 끄고, 꼬부기한테 사과했다. “미안해”. 그리고 말했다. “같이 태초마을로 돌아가자” 가뜩이나 힘들게 사막까지 왔는데 자신의 한마디에 갑자기 바뀐 나의 태도에 당황한 꼬부기가 말했다. “뭐야.. 뭐야이거.. 어...” 그런 꼬부기에게 말했다. “나한테 좋은생각이 있는데… 너 혹시 찐만두 만들어본적있니? 찐만두에는 불이랑 물이 많이 필요하대..” 대충 어떤 말을 할지 예상한 꼬부기가 어이없다는듯이 피식하고 웃었다.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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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가 어렵다고하길래 '1시간만에 소설1페이지 작성할수 있다는걸 보여주겠어!!' 라는 목표를 가지고 쓴 글이다. 처음부터 병맛 컨셉으로 시작한 소설이라(원래는 파이리랑 꼬부기가 화해하는 장면을 샤부샤부를 만드는것으로 마무리하려 했었는데 갑자기 만두가먹고싶어서 찐만두로 바꿈) 쓸데없는 말도 많이 들어가있는데, 그래도 나름 요즘 느끼고 있는 것들이 녹아들어가있다. 쓰고나서 든 생각은, 또 다른 소설을 쓰라고 하더라도 비슷한 흐름이나 주제의식을 가지고 소설을 쓸것같다.. 라는 것이다. 결국 홍상수 스타일이 되는것인가..
나도 한때는 논문하나를 작성하는것이 그렇게 어렵고 힘든일이었는데, 지금와서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 처럼 느껴진다. 그당시는 잘써야 한다는 괜한 압박감때문에 쓸 내용이 있어도 주저주저했는데, 지금은 뭐 그까짓거 대충..하면서 끄적여도 된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남들도 이런식으로 생각하면서 논문을 쓰기 떄문이다. 물론 masterpiece를 만드는것이 모든이들의 로망이지만, 생각보다 그런 걸작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별로없고, 처음부터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 내기도 어렵기 때문애 더더욱 그렇다. 처음에 '다들 대충살아..'라는 이야기를 들었을때에는 자존심도 없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요즘은 많이 유해졌다. 어떻게보면 편의주의고 어떻게 보면 삶의 지혜인것 같다. 어떤것에 대한 지혜냐면.... 좀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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