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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인간일까? 를 읽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가 퍼져나가고, 기술과 매체의 발전을 통하여 우리는 '정의'에 대한 혼란을 겪고있다. 이에 대한 여러 예들 중에서 생명공학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인간'이라고 불려왔던 것들에 대한 실험을 정당화하였고, 이에따라 다양한 관점에서의 의견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현재는 이런것들이 일종의 이슈거리로 여겨지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런 문제들은 일상 생활으로 흡수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각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요구 될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상황을 염두하여, 인간의 역사를 되짚어 봄으로써 어떤 과정으로 '인간'이라는 정의가 정립되었는지, 그리고 다른 종들과 다른 특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보는 시도를 한다. 책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인간'이라는 용어에 일관성이 없다면 '인간의 가치'라는 말은 어떻게 될까?"


흔히들 인간은 불과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라 한다. 또한 언어(문법)와 예술(문화), 그리고 종교와 도덕을 가지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는 이성(理性, 즉, 본능을 초월하여 목적을 이루려는 사고의 방법)이 존재한다 하였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동물에게서도 이러한 특성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으로 이에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으며, 특히 '본능에 반하는 이성'에 대한 논의는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또한 인간은 다른 생물보다 우월하다고 자평하는데,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인간의 특성 대부분이 신체적 약점을 진화적으로 보완한것에 지나지 않으며, 지적능력과 도구, 언어, 요리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목적성이 이성의 특징인것은 사실이지만 목적성이 지닌 특수한 성질 때문이 아니라 그 목적을 깨달은 동물이 진정으로 특별한 그 이상의 무엇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 본능은 대체로 어떤 기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본능에 의한 행동과 목적에 의한 행동을 구별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목적성의 전제조건은 자기인식인데 인간만 이것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도 종종 있었다. 지금까지의 유일한 검사에 따르면 침팬지, 보노보, 오랑우탄과 몇몇 고릴라들이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다. ~ 인간이 유일하게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다른 종의 입장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종에게 나름의 유일한 인식형태가 있다고 주장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유일한 지위를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을 빼앗길 것이다. 어떤 종의 인식의 증거를 다른 종의 의사소통 체계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만족스럽게 증명될 수 없다. "


오래전부터 상상속에서 거인으로, 그리고 난쟁이로 묘사되는 것들은 인간과는 다른 부류로 여겨져왔다. 또한 유사인간들(similitudines hominis), 특히 유인원을 '퇴화된 인간'으로 평가하는 견해는 과학의 시대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현실적으로는 피그미족이 예로 들어지는데, 피그미족의 이웃들은 침팬치가 개코원숭이나 콜럼버스 원숭이를 잡아먹는 것처럼 도덕적인 가책 없이 피그미족을 사냥해서 잡아먹으려고 했다. 제국주의로 인해 탐험이 활발하던 초기에는, 흑인을 발견하고서 그들에게 이성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으며 더나아가 흑인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프레스터 존'의 전설), 탐험을 계속 할수록 문명화되지 않은 부족, 그리고 그들(백인)과 신체적 특징이 많이 다른 흑인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는 흑인에 대한 시각을 정반대로 바꾸어 '인간의 피부를 가진 짐승'등의 표현이 사용되는, 열등한 인간으로 흑인을 바꾸어 놓았다


이후 진화론과 유전학이 발전하였다. 진화론의 특성에 따라 '퇴화'라는 단어를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대신, 서로다른 긴팔원숭이, 제비갈매기등이 격리되면 종이 바뀌듯, 흑인과 백인이 계속떨어져 있었다면 이들은 결국 별개의 종이 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인간 표준(백인)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들을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아리안족을 꼭대기에, 흑인을 가장 아래에 놓는 인종 등급화 작업이 실시되었고, 유전학은 악용되어 우/열등한 인간으로 서로를 분류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나치즘에까지 영향을 미치다가, 생물학이 발전하면서 상호간의 유전적 차이가 없음이 확인되자 이러한 주장은 사그라들었으며, 이로써 서로를 포괄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역사를 인식하며 더욱 나아감으로써 다문화, 다문명 시대에서의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포괄'의 범위를 더욱 더 확장된다. "모든 생물상은 같은 진화 연속체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은 다른 동물과 조상이 같으며 다른 유인원들과는 진화론적인 기준으로 조상이 가깝다. 이 모형의 맥락에서 인류는 일관된 개념인가? 진화 역사의 어떤 지점에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것이 설득력 있는가? ~ 즉 진화론은 논리적으로 보면 굴에게 투표권을 줄 때까지 동물계와 우리의 경계를 다시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윈)는 '인간의 유래'에서 '몇몇 유인원과 같은 동물에서부터 인간까지 등급을 매기는 연속적 형식에서 어느 지점부터 '인간' 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야 하는지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할것이다'라고 썼다" -154p


본격적으로 저자는 최초로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범주에 들어온 '호모 하빌리스'와 143000년전에 아프리카에서 살았다는 루시,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의 예시를 든다.(156p~). "가령 만약 우리가 흑인이라면 백인 동료보다 가령 4,5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살던 흑인들에게 더 강한 동질감을 느낄까? 대부분의 측면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고, 대단히 많은 것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아주 먼 조상이 같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 인종주의자라고 비난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왜 루시를 '최초의 인간'으로 선택했는가? 왜 더 이전의 동물이나 우리가 친밀감을 덜 느끼는 그 후의 것들을 공통의 조상으로 배제하지 않는건가?"


"네안데르탈인은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되고, 사냥과 장례, 언어, 예술등과 같은, 인간의 특성이라 여겨지는 증거에 대해서는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한다.네안데르탈인을 인간공동체에서 전적으로 배제하려 하거나 열등한 인간으로 강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능력이 열등하고, 문화가 발달되지 않았고, 지능이 제한되어있고, 이성적 능력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 현대 고고인류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의 본성에 대해 논쟁하는 어투는 19세기 흑인들에 대한 논쟁 때 사용하던 것과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164p


"과거에 인간과 사실상 구별되지 않는 인간 아닌 종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다른 많은 호미니드 즉 인간 본성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와 공통으로 지니고 있던 것들 말이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 종이 일관성 있는 하나의 부류를 이루는지 생각해 볼 때 꼭 명심해야 할 중요한 결론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인식 범위에 다른 호미니드 종을 포함시킬 수 있고 우리의 것이라고 여기는 필수적 자질이 이들에게 있다고 인정한다면 그들을 인류에서 배제할 수 있을까? 만약 배제했다면 그 판단이 다른 종을 배제한 것보다 더 정당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의 꼬리를 물고 다른 질문들이 떠오른다. 인종주의와 종주의는 차이가 있는가, 만약 있다면 무엇인가?" -165p


"첫째, 우리의 공동체에 인간이 아닌 것들을 편입시키는데 찬성하는 주장이 일관성을 가지려면 일부 인간들을 배제해야 한다. 일부 권리를 유인원에게 확대한다면 그것들이 속한 종 떄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지닌 적절한 자질 때문에 그렇게 해야한다. 그런데 만약 같은 규칙이 인간의 권리 부여에도 적용된다면 그와같은 자질을 지니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배제될 것이다. ~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은 고통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무 둔하거나 혼수상태거나 마비되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의 경우 고통을 받지 않을 권리는 무의미하다. 침팬치나 보노보같이 정열적이고 자의식이 강하고 반성적인 동물이 감금당하고 위험한 약물의 실험 대상이 되거나 과학을 위해 저며지는데 왜 식물 인간은 인간의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 인간의 권리라는 개념이 허물어진다" -167p


"둘째, 만약 인간의 권리가 진정으로 인간의 것이라면 그 권리는 나누어져서는 안된다. 즉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만약 그것들이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을 모든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공정한 심사를 거쳐 인간이 되는 자격을 획득하고도 그 권리에서 배제된 유인원에게는 불공평한 것이다. 그리고 그 권리를 다른 종에까지 확대한다면 더 이상 인간의 권리가 아니다. ~ 일단 유인원들이 인간을 닮았다는 이유로 인간 공동체에 포함되면 이번에는 원숭이가 유인원을 닮았다는 등의 이유로 원숭이에게 그 권리를 확대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것이다. 결국 버트런드 러셀의 말대로 굴에게 투표권을 줄 때까지 말이다." -168p


"인간의 권리 중 일부를 유인원에게까지 확대한다면 유인원이 인간과 동일하다고 간주하는 실수를 하지 않고도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부분적인 일치를 인정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융통성은 양쪽 방향으로 작용한다. 즉 더 많은 것을 포함시킬 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배제한다. 유인원이 인간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인간 공동체에 받아들여진 반면, 의식과 감각의 측면에서 자격이 없는 인간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상실할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다 죽어가는 그리고 인식력이 심하게 손상된 사람의 경우 말이다. 특성주의가 종주의를 대체할 것이다. 인간이 아닌 유인원은 생체 해부를 당하지 않겠지만 인간 태아들은 예비 부품으로 이용당할 수 있을것이다. 이런 결론은 논리적으로 정당하지만 도덕적으로 견딜만한가, 혹은 인간으로써 허용할 수 있는가? ~ 우리가 유전학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인간성과 똑같은 것을 부여받은 존재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면 어떨까? 유인원과 네안데르탈인 때문에 인간 개념을 수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이보그 떄문에 수정하게 될 것이다" -169p


"인간을 사회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학설은 낙태나 과학 실험을 위해, 태아의 희생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런 일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용하거나 사실은 고안해 내었거나 채택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당한 기준에 의해서라면 그 기준이 무엇이든 태아를 인간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들이 다른 종에 속할 수 있겠는가? 태아 상태의 인간은 인생의 일부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생물이 자궁속에 있는 순간을, 즉 아직 살아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그 후 그 생물이 살아 있는 다른 순간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 태아는 우리가 양심의 가책 없이 제거할 수 있는, 혜택받지 못한 중요한 소수로 우리 시대에 남아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아주 열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확립해 놓은 인간의 정의를 없애고, 동등한 생물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정의하지 않고는 태아의 학살을 정당화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낙태 논쟁에서처럼 필요한 자격, 흔히 말하듯 '인격(personhood)'을 갖춘 사람들의 공동체처럼 말이다. 여기서 낙태 문제를 든것은 인간에 대한 현재의 개념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하고 싶다." -177p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언젠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올수 있다. 유전적으로 개량된 인간(新우생학), 복제인간, 그리고 인간의 사고를 복제한 기계... 이들을 '순수한' '인간'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하다못해 현재 인간의 신체를 기계롤 개량한, '사이보그'들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인정해야하는것인가. 기술이 두뇌, 기억, 사고를 대체하는 '비인간화'의 흐름이, 우리를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할 무언가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또한 침팬지와 우리간의 게놈차이는 95%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때, 물리적인 차이가 인간으로 규정하는것이 아니라고 가정할 수 있다. 대신 문화적인 인간, 즉 인간공동체의 성원으로써의 인간을 정의한다면 어떨까, 하지만 공동체는 유동적이고 (책에서 서술했다시피) 점차 그 범위가 확장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공동체의 성원이 될 자격을 더이상 주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 책에서는 180페이지의 '이기적 유전자: 초인만들기'장에서 유전학에 대한 유려를 나타낸다. 교배기술으로 인한 '개량'으로부터 시작한 우생학적인 사고는 나치의 대량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며 정점에 달한다. 나치로 인해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우생학은 하지만 '유전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와, 인간을 대상으로하는 실험을 시작하였다. 이미 배아 복제를 통한 질병치료가 합법화되어 이루어지고 있으며, 확인가능한 유전자를 변형함으로써(범죄 유전자와같은, 특정 질병에 대한 소인 제거) 더욱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하지만...


"만약 그 일(유전자 조작)이 시장의 힘에 맡겨지게 된다면, 부자들이 제일 좋은 유전자를 매점하여 후쿠야마가 말하는 '유전자 특수층'이 생겨날 것이다. 인간은 카스트 제도에 갇혀서 살아야 할 것이다. 프랜시스 크릭이 주장하듯 '인생의 거의 모든 측면이 분자 수준에서 미리 설계된다면' 정신에서 도덕성이 밀려날 것이다. 행동 경향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더 많을수록 성취, 범죄, 어리석은 짓, 선행, 악행에 대한 개인의 책임은 더 작아진다" -192p


또한 유전학으로 인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정신'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신경학적 연구는 '사고'라는것을 시냅스가 폭발하고 단백질이 방출되는 단순과정으로 이해하게 하였다. 과학으로 필두되는 유물론은 '영혼/정신'을 '뇌'. 혹은 '위의 일종'으로 투사시켰으며, 인공지는 연구는 기계적인 본성으로 이들을 구현하고자 한다. 만약 기계가 성공적으로 인간의 사고를 복제할 수 있다면 그 기계는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분류될 수 있을까? 혹은 역으로, 우리가 자동 장치이거나 영혼없는 짐승이라는것을 받아들여야 할까?


슈타글(Justin Stagl)은 인간을, 전통과 단절되지 않으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특성들의 조합으로 정의해야한다고 한다. 이는 덜 발달된 생물학적 유산을 가지는 사회문화적인 존재로, 실패와 결점을 극복하고 '초인간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동물'들과 구별되는) '더 나은 본성'을 가지는 존재로 생각하는것이다. 단 '인간의 본성'은 확정되지 않으며,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 또한 현재의 본성에서 얼마나 다른 본성이 현재 인간의 정의에서 벗어날것인가에 대해 답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변화를 겪으면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특수한 지위인 '인간'이라는 부류로 남고자 한다면 고고한 '인간성'에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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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만물을 다스리라는 창조주의 계시아래 우리는 '인간으로써' 다른 생물들을 지배한다. 우리는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으며 우리를 능가하는 동물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비록 신체적 측면에서는 다른 동물들에 열등하지만, '발달된 지능'이라는 엄청난 무기로 그들을 제압하고 그들과 우리자신을 분리해왔다. 하지만 유전공학과 기계공학, 그리고 컴퓨터공학은 이러한 우리가 가져왔던 이러한 기준을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는, 현재의 우리와 다른 모습(태아) 또는 다른 형질(개량인간)을 가진 우리間의 '인간' 분류의 문제, 또한 우리가 인간으로써 당연히 여겨왔던 '정신과 인격'이, 생각할 수 있는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상황으로 인해, '우리가 정말 인간일까?'라는 의문을 갖게된다. 


2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150페이지까지는 인간과 동물과의 간격을 좁히고, 인간의 인간間의 구분의 역사를 서술한다. 이렇게 지루하기까지하게 길게 늘여놓은 배경설명은 뒤의 50페이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현재 포괄적으로 이해되는 '인간'이라는 개념은 외형적인 특성에 따라 구분되는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와 고대의 유사인간들과의 차이가 크지 않음이 확인되면서 이는 적합한 기준이 아닐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지능'으로 인간을 구분하자면, 지능을 가지는 기계의 출현에 따라 서로의 구분이 모호해 질 것이다. 더나아가 언젠가 우리가 우리자신을 지금과 다른 '개량된 인간'으로 변형시키고, 우리가 현재 '수량, 비율,정도'으로 나누는 인간의 기준을 그 시기에 적용하게 된다면, 현재의 우리와 그당시의 우리는 서로 다른 개체로 인식되어야 할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자의 말대로, 우월인자를 가지는 인간은 자신을 기존 인간과 구분짓고 서열화하여 또다른 차별을 유발할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에 슈타글의 정의를 인용한것처럼, 일련의 진화의 흐름상에 있는 개체를 '인간'으로 정의하는것이 합당해 보이고, 특히 인간이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보완한, 도구 및 언어등의 사용이(그리고 이들를 더욱 효율적으로 쓸수있는 방향으로 진화된,) 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큰 척도로 작용되는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인간을 인간이라는 범위내로 한정시키려 하는것 보다(시대가 지날수록 인간의 범위는 넓혀져간다), 인간이 가진, 자신을 동물과 구분하는 '신념'들을 추구하는 개체를 인간으로 생각하고, 이러한 신념들에 최선을 다하는것이 인간의 도리라 하며 글이 마무리된다.


이 책에서는 이슈거리인 태아문제나 인간복제, 인공지능에 대한 '상세한'내용은 다루지 않았으며, 저자의 결론 또한 확실하게 드러내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많은 역사적 증거를 제공하며 그의 주장을 펼침으로써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주었다. 여러 생각은 들지만 책 요약하는데에 많은 힘을 쓴데다가 빨리 다른 책들을 읽고싶기 때문에 글은 이정도로 하고 마무리해야겠다. 


단 문득 드는 생각, 소금과 물이 있을때, 습기먹은 소금은 소금물인가? 그리고 1L의 물에 소금 한알갱이를 넣은것을 소금물이라 할 수 있나? 결국 우리가 무언가를 구분하는것은 휴리스틱(heuristic), 여기서는 '시각적'인데에 기인하며, 이러한 인식구조는 한동안 변하지 않을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제시된 내용이 논리적으로는 정당하지만, 이를 일반인들에게 납득시키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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