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From the point of you :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If there is any one secret of success, it lies in the ability to get to other person's point of view and see things from that person's angle as well as from your own.” 
 - Henry Ford

전철 타는 것을 좋아한다. 창밖을 보면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그 짧은 시간동안 자신만의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를 관찰?하는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구걸하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사람이 어떻게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부터 돈을 뜯어낼까?’ 하며 유심히 지켜본다.

이번 구걸인은 통근전철 안에서 “한번만 도와주세요!”를 연신 외치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성인군자라 하더라도 돈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도와달라고 외치면서 동시에 다음 칸으로 이동하려고 매우 빠른 속도로 걸음을 걷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통근전철이었기 때문에 복도에 있는 사람들조차 뒤를 돌아봐서 눈길 한번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명한명 힘들게 밀쳐가며 자신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모습일 뿐이었다. 그러고선 생각하겠지, ‘세상이 나를 도와주지 않네, 거지같은 세상!’ 하지만 인간은 타인의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 관심을 어떻게 자신에게 돌릴 수 있을까? 그것은 타인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봄으로서 알 수도 있다.

여기에 또 다른 구걸인이 있다. 몇 년 전부터 매일같이 같은역에서 출근하시어 경쾌한 찬양 메들리를 틀며 전철 안을 순회하시는 앞이 보이지 않는 분이다. 부인으로 추측되는 분과 함께 다니시기도 했는데 요새는 무슨 사정이 있으신지 혼자 다니신다. 전철 1호선을 타는 분이라면 익히 보셨을 것이다. 이렇게 꾸준하게 노력하시며 적어도 나만큼은 관심을 끌었는데 나를 행동(적선)하도록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상대방의 ‘기대심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걸음걸이로, 어떤 음악으로, 어떤 손동작으로 적선을 바라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갑자기 내가 알고 있던 방식이 아닌,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걷지 않고 한자리에 서있기만 한다든가, 슬픈 음악을 튼다든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며 적선을 바라는 등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나처럼 익숙했던 사람은 “어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호기심을 갖게 되고, “무슨 안타까운 일이 생겼나보다”하고 생각하며 그동안 주저하던 적선을 실행에 옮길지도 모른다.(단, 나는 구걸인 에게 적선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예로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훈계하는 부모님을 생각할 수 있다. 대개 공부를 하지 않거나 성적이 낮게 나온 경우 그 결과에 대해 꾸짖는 것을 보통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위의 예에 따라 갑자기 꾸짖음을 하지 않는다면 자식은 변화에 의아해 하며 “부모님이 나를 포기하셨나. 이럴 순 없어!”하면서 공부를 스스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더 나아가, 어느 누구도 훈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부모님이 고려하신다면 다음과 같이 자존감을 자극하며 스스로 공부하도록, 훈계 아닌 훈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좋아하는 xx에게 성적표 인증 한번 해보지 않을래?” 물론 사람에 따라 역효과가 나올 수 있으므로, 상대방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사람은 나 자신(의 욕구), 혹은 ‘자존감’이 중심이 되어 생각하며 행동한다.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을 싫어하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놓치기 쉽다. 왜냐하면 역시나 상대보다는 내가 내 생각과 행동의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확연하게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군대라는 곳이다. 잠자는 시간을 포함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이들과 보내는 그곳에서는 물론 예전보다는 (병사 간 관계가)많이 수평적인 관계로 발전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수직적인 모습이 존재하며, 이때 선임자와 후임자의 관계는 어떻게 보자면 갑(甲)과 을(乙)의 관계로 볼 수 있을것이다. 을은 갑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며 집단에서의 유리한 위치 혹은 후에 생기는 불상사나 혹은 기회 등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노력한다.

이 노력에는, 물론 아부(사바사바라고 읽고 ~xucking이라고 발음한다)도 중요하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가 원하는 바를 읽어서, 이를 ‘미리’ 행동에 옮긴다는 것이다. 상대가 언급하기 이전에 이미 처리를 빠르게 끝냈다는 의미에서 ‘빠릿빠릿’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물론 이 두 속성은 독립적이지 않으며, 두 속성이 합일을 이루어 매우 높은 수치를 기록할 때, 이를 ‘훌륭한 인재’라고 한다.

(생략) 

비록 군대라는 집단에서는 이런 행위가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지므로 그에 따른 폐해 역시 존재하지만, 다른 사회집단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며, 이를 잘하는 사람을 ‘처세술이 좋다’라고 표현한다. 또한 이것은 집단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입장에서도 적용이 되며, 이때에는 ‘눈치가 빠르다’라고 표현한다.

또 다른 예로, 얼마 전 소셜 데이팅 서비스에서 수행한 ‘가장 기피하는 선물’로 종이학이 뽑혔다. (동의하지 않으며, 소셜 데이팅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들의 목적을 숨김없이 보여준 예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고 했을 때, 기껏 며칠 밤을 새서 정성스럽게 만든 종이학이 상대방에게는 오히려 전혀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상대방에게 열심히 했다고 ‘호소’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은근히 많다. 자신은 호의로 한 일이라고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부담스럽고, 심지어 짜증나는 경우가 있는데, 역시 사람은 자기의 생각 위주로 생각함으로서 ‘아니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해줬는데 왜 그래?’라고 생각하며 서로의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때의 잘못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것은 쇠똥구리가 자신이 열심히 굴린 똥?을 우리에게 주는 행위와 같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은 호의는 결국 ‘자신의 만족을 위한 행위’임을 인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넌 내게 똥을 줬어!)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둘 간의 관계는 앞으로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받는 사람에게는 단지 거절의 표현이지만, 주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간의 자신의 노력이 헛수고였다는 ‘상실감’과 함께 자신의 ‘자존감마저 붕괴시키는 하나의 충격적인 선언이기 때문이다. 결국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더라도, 상대를 싫어하는 마음은 마음 한편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상대방에 입장에서 고려하여 호의를 되돌려야 한다. 우선 거절에 앞서 상대방에게 그동안의 노력 혹은 투자에 대하여 격려하고 칭찬한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상실감’만큼은 주지 않게 되었다. 여기에서 끝나게 되면 상대가 나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상대에게 충격을 준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는 것은 “나는 착한 사람이니까”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합리화에 지나지 않으며, 이로서 더욱 더 서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과정에서 매우 많은 심리적 도구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것은 각 개인의 성향에 따라 작용이 다르다. 즉, 모든 상대방과의 대화에 앞서서 상대방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상대방과의 효율적이고 즐거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또한 상대방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통해, 상대방의 특성을 가능한 많이 모아, 마치 퍼즐 맞추듯이 연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상대방에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하지만 내 자신에 바빠서(라는 변명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편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글을 쓰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이론적이라도 알고 있는 것(너무 분석적으로 써놔서 어떻게 보면 인간미가 떨어져 보일수도 있겠다)을 누군가에게 전달함으로서, 다시 한 번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봐야겠다’라는 다짐을 하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from the point of view는 '~라는 관점에서' 라는 뜻을 가지는 숙어이다. view와 you가 비슷한 발음구조를 갖는다는데에 착안한 일종의 언어유희로 제목을 지었는데 어느정도 의미가 전달되어 만족스럽다?? 서두에서 밝혔듯, 통근전철에서의 구걸인을 보자 떠오른 내용인데, 급하게 쓰느라고 좀 내용이 분산된 감이 없잖아 있다. 그래도 요약하자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라는 말을 하고싶었던것이다. 타인이 좋아할만한 것, 타인이 싫어할만한 것 에 대해 분리하여 예를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글이 읽기 힘들어보인다. 물론 이렇게 되면 타인을 생각하지 않은 글이 되고, 이는 결국 이 글은 '나 자신을 위한 글'임을 글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이 글에 이어서 올릴 주제도 어느정도 생각해 놓았지만, 사회적 이슈도 포함하게 되어 글쓰기가 조심스러워지게 된다.

댓글

Holic Spirit :: Tistory Edition

design by tokiidesu. powerd by kak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