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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e Homo - HUMAN, ALL-TOO-HUMAN #4

It was then that my instinct decided inexorably against any further giving way, going along with, or taking myself for another. 

그 당시 나의 본능은 무자비하게, 더 이상 굴복하는 것, 추종하는 것, 자신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을 아주 끊으려고 결심하였다.


Any kind of life, the most unfavorable conditions, sickness, poverty —anything seemed preferable to me than that unworthy “selflessness” which I had first fallen into out of ignorance, out of youth, which I later hung onto out of lethargy, out of a so-called “sense of duty.” Here, there came to my aid in a way I cannot sufficiently admire and at exactly the right time that bad inheritance on the part of my father at bottom, a pre-determination to an early death. 

어떠한 종류의 삶도, 가장 불행한 조건도, 병도, 빈곤도-무엇이든간에, 내가 빠져있던 '무아주의'보다는 가치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무아주의에 나는 처음에는 무지와 젊음으로인해 빠졌었고, 나중에는 타성에서, 이른바 '의무감'으로인해 거기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이때 나는 나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리고 근본적으로 말하면 요절의 원인에 불과한 나쁜 유산이, 대수롭지 않은 방식으로, 더구나 아주 알맞은 때에 나를 돕기위해 찾아왔다.


Sickness slowly freed me: it spared me any break, any violent or indecent step. 

병은 나를 괴로움에서 서서히 해방시켰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모든 결렬, 모든 흉폭과 불쾌한 행동을 피하게 해 주었다.


I suffered no loss of goodwill at that time and even gained much in addition. 

그 때 나는 사람들의 호의를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새로운 호의를 받았을 정도였다.


At the same time my sickness gave me the right to a complete reversal of all my habits; it allowed, it commanded me to forget; it presented me with the necessity of lying-still, of idleness, of waiting and being patient...But that means thinking!...My eyes alone put an end to all bookwormishness, in plain English, philology: I was released from “books,” for years I read nothing more the greatest good deed I have ever done for myself! 

병은 또 나의 생활양식을 아주 전복시키는 권리를 나에게 주었다: 그것은 나에게 망각을 허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망각을 명령하였다: 그것은 나에게 조용히 누워 있을 것을, 유유하게 지낼것을, 때를 기다리고 참는 것의 필요함을 나에게 주었다. 이것이 바로 '생각'한다는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눈 떄문에 모든 책으로 부터 해방되었다. (이는 '문헌학'에서의 해방 또한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수년간 한권도 읽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일찌기 내 자신에게 베푼 최대의 은혜였다. 


That most underlying self, covered over as it were, grown silent as it were under a constant obligation to listen to other selves (and that is what reading means!) awakened slowly, shyly, doubtfully but at last it spoke again. 

말하자면 푹 파묻혀서 다른 사람들의 자아에 귀를 기울여야 하기 떄문에 벙어리처럼 되어 있는(그것이 바로 독서의 의미이다!) 저 맨밑에서의 '자아'가 서서히 남몰래 눈뜨기 시작하였다


Never have I been so happy with myself as during the sickest and most painful periods of my life: one has to look at “Daybreak” or perhaps “The Wanderer and His Shadow” to grasp what this “return to myself” was: the highest sort of recovery itself!...The other merely followed from this.

나는 내 평생의 가장 병들고 고통이 심하였던 시절처럼 많은 행복을 누린 적은 없었다. 이 '자기에의 복귀'가 어떤것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벽' 혹은 '방랑자와 그 그림자'를 보면 될 것이다. 이 복귀는 최고 종류의 회복 그것인 것이다! 또 하나의 회복은 단지 그 결과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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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있어 고통이란 그저 '신체적'인 고통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의 정신적 체력은 누구보다도 더욱 강했고,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나 또한 자처해서 남들이 고통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시기를 가졌는데, 그때만큼 마음이 평온하고 감동적인 적은 찾기 힘들어 그 시절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이런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단순히 배고프면 우울한 사람들이 세상에 많기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더욱 가치가 있는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위 이야기를 듣게되면 고통가운데에서 낙천적으로 이를 극복해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어려운데, 그보다는 그의 내면적 강함이 외부의 자극에의해 영향받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온 이러한 사건을 자신을 이루는 하나의 내면적 인자로서 받아들임으로서 마치 고통이라는 교훈/기회를 통하여 '자기에의 복귀'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이러한 외부적 자극들이 자기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작용하는것이다. 개개인이 그러한 자극들에서 어떤것을 얻어낼/생각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 자신이 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약한'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아픈'사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글의 주제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차라투스트라에 비해 심심해서 많은 부분을 건너뛰곤 했기 때문에, 여기에 나온 '복귀'라는것이 어떤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이런 맥락으로 진입하지 싶다.



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Op.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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