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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과 결정, 그에따른 결과와 책임에 대하여

오늘 부동산 사건 때문에 휴가를 내고 법원에 갔다. 오랜만에 휴가를 냈으니 기분은 좋아야 했지만 휴가를 취소하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다. 이번주 초 갑자기, 예전에 작성했던 보고서 때문에 고객사 이슈가 터져서 급하게 수습해야 했는데, 별것도 아닌 부동산일 가지고 휴가 써버리고 일도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짜증이 났다 (이슈 처리가 미뤄지면 하루마다 독촉메일이 몇개씩 온다).

 

오늘 휴가에 맞춰서 그동안 미뤄왔던 잡다한 일들을 몰아서 처리하려 예전부터 계획했었고, 그래서 하루종일 짜증난 상태로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저녁때까지 엄청 돌아다녔다. 그러곤 집에오자마자 저녁먹을 힘도없이 바로 쓰러져 잠깐 잠을잤다. 일어나서 밥 대충 먹고 펜트하우스 보고 다시 바로 자려고 했는데, 왠지모르게 몸에서 너무 열이 많이나서 한번깨고 도저히 다시 잠을 잘 수 없었다. 몇시간동안 뒤척이면서 하릴없이 오늘의 짜증을 곱씹었더니, 머리속에서 고민의 갈피도 잡히고 잠은 여전히 안와서 그냥 포기하고 글이나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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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업무는 여러 객관적인 지식들을 바탕으로 내/외부인이 볼수있는 기술문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좀더 개발자 친화적인 표현을 쓰자면, '입코딩'이 업무라고 할 수 있겠다. 직접 코딩할 필요는 없어서 편하고는 좋은데, 대신 내가 남긴 문서만 가지고 개발자가 코딩을 하기떄문에 문서화에대한 책임이 요구된다. 문서를 약간 애매하게 적어놓으면 이해가 서로 달라서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 떄문이다. 나는 '이건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겠지' 하고 생각한 부분이, 상대입장에서는 '그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이건 안해도 되겠지'로 이해하는 등, 서로의 편의에 의해 문제가 발생하는일이 종종있다 (이번 이슈가 그런케이스)

 

대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경우 나같이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다. '문서를 제대로 못적었으니까 이런일이 발생하는거 아닌가.', '적는게 어려우면 회의라도 많이해서 서로 synchronize 하면 되는거 아닌가' 라고 저쪽에서 말하게되면 뭐라 할말은 없다. 내 입장에서 따지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하는 일이니까, '혹시라도 애매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확실하게 물어보면 되는거 아닌가?' 등등으로 반박할 수는 있겠지만, 뭐 결국에는 최종 판단을 한 '결정권자'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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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법원을 간것은 상대방의 기망행위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물건에 대해 충분히 알아봤으면 계약 자체를 하지 않아서 이런 사태까지 벌어지지도 않았겠지만, 상대가 제공한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해서 계약을 진행하여 이 사단이 난것이다. 법적으로 걸고넘어질 수 있는 부분을 회피하며 계약이 이루어진거라, 빼박팩트를 제시하지 못하고 정황증거만 제출하고 있어서 법원 출석만 열심히 하고있는 중이다. 서울 다니느라 왔다갔다하는 시간 돈낭비 스트레스가 (게다가 별것도 아니기 때문에) 매우 크다. 그놈의 도장 한번 잘못찍어서.. 

 

또 얼마전에 소송을 하네마네 하느라 힘들었던 부동산 중개사고가 하나 있었는데, 이 사건은 관련 시행령 및 유권해석을 서로가 다 숙지한 상태에서 여러 부서에 걸친 공무 실무자들의 상세한 업무현황을 매일 파악해야만이 방지할 수 있었던 까다로운 사건이었다. 중개사는 '자기가 할수 있는 만큼은 해줬다. 세세한 것까지 신경써줄수는 없다' 하며 책임을 회피했고, 뭐 그말도 아예 틀린말은 아니라서 조금만 보상받고 말았는데, 결국에는 도장 찍은 내가 결과에 책임을 져야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내가 조금 더 신경쓰고 알아봤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였다. 문제는 '조금 더'가 어느정도 수준이냐는것. 후자의 문제는 공인중개사는 물론이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도 당할 수 있는 문제인데 대체 어느정도까지 준비해야하는지.. 물론 도장 찍은 사람이 나니까 내가 책임지는것은 맞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는건 과한것 아닌가 생각도 드는데..

 

렌터카 이용자 조항에 '등'이라는 문구 하나때문에 렌터카 업체의 많은 책임이 이용자에게 떠넘겨졌다는 사실이 유튜브에서 한참 이슈였는데, 이런 상황도 조항 한글자 한글자를 파악하지 못한 이용자의 전적인 책임인건가.. 결국 어떠한 상황에서든 결정한 사람이 모든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게 맞는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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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누가 어깨 뒤에서 지켜보며 결정을 강요하는 시대는 아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의 판단을 바탕으로 스스로 결정해서 모든 일들을 처리한다. 그렇기 떄문에 모든 결정에 대한 결과와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판단한 사람에게 달려있다.

 

- 누가 억지로 회사(학교)에 들어가라 했냐, 너가 결정한거 아니냐

- 누가 억지로 결혼(출산)하라 했냐, 너가 결정한거 아니냐

- 누가 억지로 물건을 사라 (인연을 맺으라) 했냐, 너가 결정한거 아니냐

- 누가 억지로 음식을 먹으라 (다이어트 하지 말라고) 했냐, 너가 결정한거 아니냐

- 누가 억지로 살으라 (의지만 있으면 바로 한강갈수 있으니까) 했냐, 너가 결정한거 아니냐

 

사람은 삶을 살면서 매 순간마다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장하자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수 있다. 요즘에는 이러한 명제에 반박을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 너가 월급이 적은 이유는, 너가 (가족을 우선시하여) 회사에 충성을 다하지 않았기 떄문이다. 노력 부족한 너의 탓이다 

- 너가 게임에서 진 이유는, 너가 평소에 연습을 안했고 적군 정찰을 소홀히 했기 떄문이다. 노력 부족한 너의 탓이다

- 너가 건강이 나빠진 이유는, 너가 음식을 잘안먹고 운동을 안했기 떄문이다. 노력 부족한 너의 탓이다

- 너가 싸이코패스에게 상해를 당하는 이유는, 너가 그의 심기를 건드렸기 떄문이다. 노력 부족한 너의 탓이다

- 너의 자식이 건강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식에게 충분한 시간, 정성을 쏟지 않았기 떄문이다. 노력 부족한 너의 탓이다

- 너가 왕따(이혼) 당하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구실(애정, 사회성의 부족)을 주었기 때문이다. 노력 부족한 너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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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타공인 판단력, 결정력,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인생의 구렁텅이로 빠질 뻔한 상황에서 빠른 판단으로 그 상황을 피할 수 있었고(진짜 돌이켜보면 ㅈ될뻔한 경우가 몇번 있었다), 또한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선택을 해서 지금의 위치에 올라올 수 있었다. (이정도면 전반적으로 성공한 삶이라 자찬한다) 그리고 일이 잘못되더라도 끈을 놓지않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정하는것을 좋아라했다.

 

하지만 요즘은 약간 달라진게, 여태까지의 결정은 나만을 위한 결정이었다면, 이제는 남들을 위한 결정을 하는빈도가 더욱 많아졌다는 것이 문제다. 나 혼자서 상황을 통제하고 책임지는것은 잘못되더라도 나만 힘들면 되는 문제였는데 이제는 남들이 끼어버리니 통제가 안된다. 코인에 투자하는것은 떡락해도 전~혀 타격이 없어서 전재산을 박아도 상관없었는데 이제는 (손실을 참지못하는) 가족을 책임져야하니 비중있게 투자를 못하고 그러다보니 너무 답답하다. 또한 예전에 개발자로써 혼자 코딩할때 문제생기면 몰래 코드를 수정하거나 해서 알아서 때우면되는데, 이제는 기록이 남는 문서를 조금만 잘못적어도 욕받이가 되어버리니 매우 소심해져간다.

 

타인과 함께할수록 책임을 지지않기위해서 결정하는것을 꺼려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스스로를 위한 결정도 미루려 하는 습관이 생겨가는것 같다. 그러다보니 매우 타인에 의존하고 수동적이고 현상유지적인 삶으로 변하게 되는것 같다. 내 인생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가는거지? 이것이 내가 답답하게 바라보았던 어른들의 어쩔수없는 모습인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나.. '업무가 나랑 맞지않는건가,' 해서 다른 업무를 생각해보면 그것보단 지금 업무가 맘에드는 부분이 너무 많다. 이렇게 또다른 현상 유지가 되어가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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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부정적 사건 발생 원인은 (지적, 신체적, 시간투여 등) 노력의 부족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주어진 이러한 자원들은 한정되어있고, 또한 개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지적, 상황적 특성 등에 따라 투여되는 자원의 절대양도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 사건에 대한 원인규명을 할때, 한 개인은 어느 범위까지 exemption (면책) 될 수 있는가?

 

근본적인 원인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주변환경 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면 어느 '정도'가 되어야 개인의 결정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한 결과로 결정되게 될것인가? 예를들어 여성차별의 문제에서 '여자가 높은자리에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유리천장을 깰만한 노력을 안했기 때문이다'라고 개인을 비난하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곤 하는것 처럼. 

 

세상에는 이러한 사회적 한계를 뛰어넘는 위인들의 예시가 많기때문에, 대부분의 노오력충들은 아마 대부분의 문제를 개인의 노력문제로 치부해 버릴 것이다. 이부분에서 내적갈등을 겪고있는게, 내가 바로 노오력충이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대부분의 문제는 개인이 노력으로 극복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최근들어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능력이 무한해야 한다'가 뒤따라와야함을 느끼고 있다.

 

자신의 능력과 책임의 boundary를 특정 수치로 지정해두어야 결정과 그 결과로 인한 개인적 스트레스를 감소시킬 수 있을것같다. 본인의 능력과 책임의 한계를 무한정으로 생각하게된다면 무한대의 결정만큼의 스트레스를 안고 살게 될것이고, 본인의 능력과 책임의 한계를 아주 작은 범위로 설정하게 된다면 아주 적은 스트레스를 안고 살게 될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본인의 능력과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수록 더욱 스트레스 받지않는 삶을 살 수 있을것 같다. 그런데 내스스로 그렇게 살수는 없을것 같다. 왜냐하면 내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고 책임(결정권)을 가지지 못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을것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당한 능력치와 결정권, 그리고 적당한 스트레스를 가지며 사는게 가장 이상적인데, 나는 아직 어느정도가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인지 파악이 안된것 같다. 내 인생에서 가장 시급하게 파악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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